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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사람의 뇌

by lowen 2023. 10. 31.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아주 엉뚱한 계기로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는 일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물에 몸을 담그다가 밀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몽골피에 형제는 불꽃 위에서 너울너울 춤추는 빨랫감을 본 뒤에 열기구를 만들어 냈어요. 아인슈타인은 쉬는 시간에 바이올린을 켜다가 상대성이론을 발견했습니다. 수많은 과학자와 발명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독일의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벤젠이라는 물질의 분자 구조를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케쿨레는 어느 날 잠이 들어 꿈속에서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잡아당기며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데요. 잠에서 깬 케쿨레는 꿈속에서 꼬리를 물고 돌았던 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져서 개의 탄소 원자가 육각형을 이루고 탄소 원자마다 수소 원자가 하나씩 붙어 있는 '벤젠 고리'를 발견합니다. 

어떻게 케쿨레는 이렇게 그릴 수 있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가지를 연결했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많은 부모님이 위인전집을 사줍니다. 그리고 위인전에 나오는 큰 인물들처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주시죠. 그런데 위인전은 하나같이 그들이 이뤄낸 업적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은 위인들이 업적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들입니다. 그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해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죠.

케쿨레는 자기 벤젠 분자 연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꿈속에서 꼬리 무는 뱀과 전혀 연관성 없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함으로써 발휘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아주 달라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유사성'이 있었던 거죠. 그걸 심리학에서는 '유추'라고 합니다. 이렇게 엉뚱한 것들을 연결하는 일은 무척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의외로 어릴 때부터 그걸 배우고 있습니다. 국어 시간에 시를 통해 비유법의 하나인 은유법을 배웠습니다. 은유는 영어로 메타포(metaphor)라고 해요. 사전에는 메타포를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내 마음은 나그네요'
'내 마음은 낙엽이요'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마음과 촛불, 마음과 나그네 마음과 낙엽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 뇌가 따끈따끈해지며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개념들을 이어 붙이면서 뇌 안의 많은 부분이 연결되거든요. 좀 더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세포 간의 시냅스가 형성되는 거예요. 은유를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두 개의 개념 사이에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작은 오솔길 하나가 생기는 거예요.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면 세포 간의 시냅스가 형성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은유를 많이 읽고, 이해하고, 사용하다 보면 유추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유추를 잘하기 위한 바탕을 다지는 거지요.

창의성은 은유적 표현을 얼마나 접하고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은유 연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국 리버풀대학교의 필립 데이비스(Philip Davis) 교수팀은 성인 30명을 상대로 셰익스피어와 윌리엄 워즈워즈 같은 고 전 작가들이 쓴 작품을 읽게 하고 MRI로 뇌의 활동을 관찰했습니다. 그랬더니 연구자들도 깜짝 놀랄 만큼 우뇌가 활성화됐어요. 특히 복잡한 문장 구조로 된 작품이나 고어로 쓰인 원본 작품을 읽을 때는 마치 뇌가 불타는 것 같았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 구조와 단어의 뜻을 헤아리는 일이 뇌를 자극하는 거예요. 이 연구를 바탕으로 데이비스 교수는 고전 작품, 그중에서도 고전 시를 읽으면 우뇌가 발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굉장히 은유법을 많이 사용했어요.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셰익스피어가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존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되는 복잡한 감정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했거든요. 이걸 읽는 동안 우리 뇌는 활성화되고, 그게 창의성 발달로 이어지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햄릿이 왜 그렇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뇌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생각은 이성과 논리에 의해 일어나지만, 결정은 감정의 결재를 받아야 하거든요. 컴퓨터처럼 알고리즘이나 확률만으로 결정할 수가 없어요. 죽음과 삶, 있음과 없음의 간극에서 햄릿이 던지는 대사에 숨겨진 메타포를 인지하는 건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걸작을 즐길 수 있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은유 연습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시를 읽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다른 문학작품에도 은유가 많이 존재하지만 시는 은유가 99퍼센트인 글이거든요. 은유법 덩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집은 대개 크기가 작아요. 게다가 책장을 넘겨보면 여백도 많습니다. 한 페이지에 고작 여섯 줄 정도 적혀 있어요. 그럼에도 시집 한권을 다 읽는 게 참 어렵습니다. 때로는 소설책 두세 권 읽는 것보다 오래 걸립니다. 시 한 편으로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합니다. 그 엄청난 은유법들을 내 머릿속에서 처리해야 하니까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외국에는 계속해서 시를 읽으면 체중이 감소한다는 연구까지 있습니다. 학술적으로 증명이 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자들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뇌 활동과 에너지를 연구한 행동 심리학자 이완 맥네이(Ewan McNay) 교수는 뇌가 아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밝혔습니다. 격렬한 지적 활동을 할수록 많은 포도당을 소비한다는 거예요. 시를 읽는 행위도 분명 열량을 소모할 겁니다. 조용하던 강연장도 이 대목에서는 술렁술렁합니다. 

우리가 시를 잘 읽지 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실용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은유법을 경험하는 건 먹고사는 데 별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바쁜 현대인들은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메타포가 아예 없는 책을 좋아해요. 바로 사전과 같은 책입니다. 사전에 메타포가 있으면 큰일 납니다. '학교'라는 단어의 정의를 찾아봤는데 은유가 듬뿍 담겨서 '내 마음의 꿈이 영그는 곳'이라는 식으로 쓰여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이런 사전류는 특정 지식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쉽게 설명해 줍니다. 읽는 사람에게 '내가 이 지식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주는 거죠. 읽고 나면 무언가를 분명하게 얻은 기분이 들어서 뿌듯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전류의 책에는 은유가 없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연결의 힘을 키울 수는 없습니다.

시에만 은유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에요. 무용 공연은 어떤가요? 오래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건 어떤가요? 음악을 듣는 것은요?

어떤 사건이나 사람의 생각, 감정들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모든 종류의 예술 활동은 메타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술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몸을 움직이고 공연을 보는 것은 그 안에 다채로운 은유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은유는 창의성의 자양분입니다. 오랜 시간 경험한 은유들은 아이들의 뇌 이곳저곳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가 금방 꺼낼 수 있는 마치 전화번호부에 있는 데이터처럼 바로바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의 DNA 어딘가에 자리 잡은 채 숨 쉬고 있다가 어느 순간 우리 아이들이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두 번째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이제는 SNS가 너무 발달해서 우리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주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깊이 사고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사람들은 긴 글 보다는 짧은 글을 선호하고 읽기 싫어서 영상으로 보기를 원하고 영상의 길이도 점점 짧아져 1분도 기다리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뇌를 많이 사용하고 깊은 사고를 한다면 아주 의외의 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 AI도 갖지 못하는 그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인간과 인간의 경쟁이 아닌 인간과 로봇이 경쟁하며 함께 성장하는 시대입니다.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시켜며 성장을 해야 할까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지금 무엇을 대비해야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요? 초등시절부터 대학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리고 있는것인지 지금 아이를 교육시키는 목적은 무엇인지 대학이 인생의 종착점은 아닌데 우리는 왜 그 목표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렸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문헌>

0.1%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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