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들은 눈 덮인 높은 산까지 올라갔다가 미끄럼 타듯 아래로 다시 내려 오기를 반복한다. 벌레를 잡으려고 하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재밌어서 반복하는 것이다. 물을 첨벙거리면서 목욕하는 걸 좋아하는 하마 역시 그냥 그 놀이가 좋기 때문에 매번 그렇게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야생 족제비도 마찬가지다. 야생 족제비들은 재미로 서로를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식량을 구해야 하고, 야생 동물의 특성상 천적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들은 놀이를 통해 천적을 만났을 때 도망치는 법과 먹이를 찾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또, 그걸 즐기는 것이다. 인간에게 놀이는 이런 동물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이러한 본능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놀이를 함께할 친구가 부족하고, 놀이보다는 학습이 우선시되고 있다. 그만큼 놀이를 다양하게 경험해볼 기회가 부족한 것이다. 때문에 막상 놀이 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본능임에도 불구하고 본능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밖으로 나가 마음껏 놀라고 하면 막상 그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더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미 혼자놀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매일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야생 족제비 그 과정에서 야생 족제비는 생명을 지키는 생존 방식을 터득해간다. 우리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놀이를 원하고, 그 본능을 따를 때 삶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행복감과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지만, 학습을 풍해서는 얻기 힘든 소중한 것들을 스스로 터득하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놀이를 즐기기 위해서 아이들은 소통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창의력을 얻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아이는 축구를 하고 싶어 하고 다른 한 아이는 야구를 하고 싶어 한다면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선택할까? 엉뚱하게 축구공으로 야구를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타협 방법을 발견해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은 새롭고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내고 놀이의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된다. 또, 두 명의 여자아이가 역할놀이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두 아이 모두 엄마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놀이를 만들어갈까? 엄마가 둘이 되어 가상의 아이를 만들 수도 있다. 혹은 한 명은 엄마가 되고, 다른 한 명은 아빠가 되거나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역할을 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고, 타인을 위해 양보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 는 것이다. 그렇게 역할을 정하고 나면 아이들은 놀이를 이어갈 것이다. 이 때 엄마 역할의 아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랬을 때 아이는 선택을 하게 된다. 울면서 '나 손가락 다쳤어라고 말하며 엄마에게 돌아가 다시 아이가 될 것인지. 놀이의 재미에 빠져서 계속 엄마 역할을 이어갈 것인지 말이다. 작은 상처쯤은 참아가며 친구와의 놀이를 이어가는 아이는 어른 흥내를 내며 조금씩 성장을 해나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다스리고, 순서를 지키고, 규칙을 지키고, 인내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인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놀이 속에서 스스로 많은 것들을 깨달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놀이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소꿉놀이 세트를 사주고 축구공을 사주며 '이것을 가지고 놀아라'라고 하는 것이 놀이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학원을 보내고 학습지를 풀게 하는 것보다 놀이 시간을 허락하고 친구 사귈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첫 번째 의무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것에 흥미를 갖는지 관찰하고, 아이가 원한다면 놀이를 함께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놀이를 이해하고 함께 즐겨주는 것은 좋은 장난감을 사주는 것 보다 아이의 놀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제대로 된 놀이 기회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참고 서적>
놀이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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