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신의 그림 속에 저마다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로, 그림이 일종의 언어와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을 올바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림에 관한 연구들은 매우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 분야는 아마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필적학이라는 학문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필적학은 사람이 쓴 글씨를 가지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를 연구하는 분야로, 주로 정신분석학에서 다루고 있는 꿈이나 신화 그리고 동화 속에 등장하는 상징물들을 개인의 필적과 연관 시켜 발전시킨 학문이다. 그림 분석은 개인의 성격이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심리 치료나 성격 검사에 주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질 문에 논리적인 말로 답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보다 용이 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시작 된 것은 불과 20세기 초로, 그리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아이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 들을 통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며, 이를 토대로 자신을 발견한다. 즉, 그림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나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곧 자신의 속마음을 표출하는 것이며,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기쁨이나 슬픔 그리고 사랑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을 그림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태양이나 물, 나무 혹은 집과 같은 주요 상징물들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림 속에 모두 녹여 내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가 사람을 그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아이 자신임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림은 우리에게 아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아이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아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떤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림이 심리 분석에서 중요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직접 엄마에게 주었다면, 이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메시지를 엄마가 직접 읽어주기 바라는 애정 표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만약 아이의 메시지를 소홀히 다루거나 무관심한 나머지 이를 간과해버린다면 아이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림 분석에서 그림을 잘 그렸느냐, 못 그렸느냐의 조형적 미적 가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여주는 내면세계이다.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즐거움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성격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심리를 반영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의사 전달에 그 목적 을 두고 있다. 아이는 자신이 걱정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 혹은 세상에 대한 의문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만약 아이가 보내는 메시지를 제때 올바로 읽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아이와의 관계를 보다 돈독히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가 지닌 모든 잠재력이 십분 더 발휘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무의식의 투영물로 인식됐던 그림은 주로 개인의 성격이나 지적 수준을 측정하는 검사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코흐Kach나 쉴리베Schliebe와 같은 학자들은 그림의 형태와 감정 사이에는 무의식적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통계적 으로 증명해보였다. 즉,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문을 제시했을 때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행복한 나무를 그려보라든가, 아니면 괴로워하는 나무나 집에 질려 있는 나무를 그려보라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를 분석해 본 결과, 상이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데 있어 아이들은 일관 되면서도 체계적인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이 같은 결과는 어떠한 그림은 행복이나 고통 혹은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라는 그 역도 성립할 수 있음 을 보여준다.
플로렌스 구디나프 Forence Goodenough와 비드로셰Widlocher, 그리고 루케 Luquet의 연구는 '나무 그림' 이 인간의 무의식을 반영한 상징물인 것처럼, '집' 이나 '사람 그림' 또한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정서적 안정 상태와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상징물임을 보여준다.
또한, 소피 모르강스테른 Sophie Morgensten을 비롯한 마들 렌 랑베르 Madeleine Rambert와 프랑수아즈 돌토-마레트 Francoise Dolto- Marette는 환자가 마음대로 그린 그림을 정신분석학적 치료에 활용해왔다. 이들 이외에 수많은 임상심리사들도, 환자의 가족 관계나 환자의 내력에 관한 정보를 짧은 시간 내에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림을 주로 활용해왔다. 흔히 가족을 그리라는 문제에 접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가족만을 그린다. 그래서 몇몇 심리학자들은 이에 관한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진척시켰으며, 그들 중 프랑수아즈 민코브스카 Frangoise Minkowska와 모리스 뽀로 Maurice Porot, 그리고 콜만 Corman 박사 등은 '가족화 검사' 까지 만들었다. 지금도 수많은 심리학자들이나 정신분석학자 그리고 임상심리사들은 보다 더 정확하고 보다 더 과학적인 그림 분석을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림 분석이 단지 연구자들을 위한 전유물은 아니다.
아이들의 영혼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세계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림 분석은 매우 소중한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 미처 눈치챌 사이도 없이 우리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림이라는 상징적 언어를 통해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내면 언어인 그림을 제대로 파악해 낼 수 있 다면, 또한 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풍요로움을 안겨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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