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케테 콜비츠는 누구인가?
케테 콜비츠는 독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며, 조각가이다. 콜비츠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1848년
시민혁명 이후 민주헌법 제정에 참여했고 교회의 권위와 남을 배척하는 복음주의를 거부하고 합리주의와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자유 신앙 운동을 펼쳤던 사람이었다. 아버지 역시 프로이센 정부의 민중 억압과 부패상에 분노를 느껴 원래
법관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양심대로 살아가기 위해 건축기술자가 된다. 이러한 케테 콜비츠의 집안은 사회적으로는
중산층 지식 계급에 속했지만 지어 분위기는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계급보다는 사회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계층에 더욱
공감해주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1891년 콜비츠는 결혼한다. 그녀의 남편도 칼 콜비츠도 의사로서 빈민구호 활동을 했던
사회주의자였다. 남편 칼 콜비츠는 베를린의 가난한 동네에 자선병원을 세워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2. 케테 콜비츠가 살던 시대적 배경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는 인간들이 어떤 실패와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처절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끊임없는 전쟁과 경제불황의 연속이었고, 모든 개개인을 끊임없이 시험대에 세우는 시간이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영역에 걸쳐 일대 변혁의 때였다. 혁명과 반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는데 1905년 러시아혁명, 1914∼1919년 1차 세계대전, 1917년 2월과 10월의 러시아 혁명, 1918∼1923년의 독일혁명, 1933년의 히틀러 집권, 1939년부터 2차 세계대전 등, 엄청난 혼돈이 시대였습니다. 이런 수많은 전쟁 속에서 사람들의 극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보고 자랍니다.
3. 케테 콜비츠의 작품세계
그녀는 1차대전에서는 둘째 아들인 Peter를 잃었고, 2차대전 때는 손자인 Peter(아들 이름을 따라지었다)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병고로 죽게 됩니다. 또한 그녀도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사망합니다. 히틀러는 그녀가 사망한 8일 뒤에 자살하게 되는데 그녀는 언젠가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인류의 끝날 줄 모르는 고통, 태산보다 더 높은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It is my duty to voice the sufferings of humankind, the never-ending sufferings heaped mountain high) 이렇게 콜비츠의 삶은 자식의 죽음으로 '애국주의', '애국주의'를 경멸하게 되었고, 불쌍한 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에 대해 고민합니다. 어머니의 관점에서 또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로 결심합니다. 그 후 그녀는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희생된 이들의 고통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도 어머니가 있고, 침략당한 국가에도 어머니가 있습니다.
전쟁터에 죽은 모든 군인은 어머니들의 자식들입니다.
따라서 전쟁터에서 죽은 자식뿐만 아니라 그렇게 죽은 자식의 어머니도 모두 전쟁의 희생자입니다."
그녀의 판화는 색깔이 없는 단순한 흑백으로 명암만의 조절에 의해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다른 어떤 채색의 그림보다도 더욱 강렬한 정서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어둠과 빛의 조화가 이처럼 단순하게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우리 인간들이 빚어내는 참상을 증언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판화는 그녀에게 꼭 필요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유화나 수채화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에는 판화보다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진정으로 강한 어머니이자,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반자였고 친구였으며 그녀의 정신은 그녀의 작품들 안에서 온전히 그대로 표현됩니다.
4. 작품의 감상
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목숨이 이유 없이 죽어야 하는 모습을 작품 안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저릿합니다. 한 아이의 어머님의 처절한 몸부림 어머니는 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지금도 현대를 살아가는 아이를 위해 수많은 위험 속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키려고 합니다. 케테 콜비츠의 이런 작품은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대변인 갔습니다. 아직도 전쟁하는 국가에서 죽지 않아도 되는 무고한 생명들이 이유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것으로 얻는 것이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나라가 달라도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 같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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