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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진짜 자주성은 언제 오는가?

by lowen 2024. 3. 17.

 

 


일찍이 전국의 초 , 중학교에서 '노 차임(NO chime) 운용'이 유행한 적이 있다.'노 차임'이란 말 그대로 수업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에 벨을 울리지 않는 것이다. 벨이 울리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시간을 확인해 수업이 시작되면 나는 이 '노 차임 운동'에는 줄곧 반대였다. 왜냐하면 '노 차임'은 아이의 자주성을 키우는게 아니라 꺾기 때문이다. 수업 벨을 없애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열중할 수 없게 된다.

 

예를들면 쉬는 시간에 모래놀이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아이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모래놀이에 푹 빠져 있다. 이윽고 벨이 울린다. 그러면 아이는 '아! 쉬는 시간이 끝났어.더 놀고 싶은 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교실로 달려간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아까 하던 모래놀이를 계속 하려고 쏜살같이 모래밭으로 달려간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시간을 잊을 만큼 뭔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그 아이가 정말 좋아서 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주적이고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에 빠져 있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의욕의 시간이다.

하지만 수업 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벨이 울려 시간을 알려주지 않으므로 아이들은 항상 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일껏 모래밭에서 놀면서도 다음 수업이 10시 10분 시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수시로 시간을 확인해야만 한다. 항상 시간에 열매여 '앞으로 5분 남았네, 조금만 더 놀자'라고 했다가, '어! 3분밖에 안 남았네, 어떡하지? 이제 교실로 가야 하나? 같은 생각 때문에 놀이에 김중할 수가 없다. 이래서는 아이의 자주성과 주체성이 키워길 리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기막힌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어른의 가치관에 맞는 것으로만 아이의 자주성을 인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주적으로 놀고, 자주적으로 말하고, 자주적으로 빈둥거리는 것을 '자주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자주성인데 말이다.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에 부모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것은 진짜자주성, 진짜의욕이라고 해도 인정해 주려 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의 기분과 말 행동을 소중히 여겨주면 아이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는 힘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게 있을 때 꺽지 말자.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 주자. 그러면 아이는 자신에 경험했던것을 통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며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것이다. 


 

<참고서적>

엄마의 의욕이

아이의 의욕을 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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