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돌 틈에 살았던 달팽이는 꽃도 풀도 없는 자신의 거처가 영불만이었다. 너무 허술해 바람과 햇볕을 피할 수 없어 무척 괴로웠다. 어느날 우연히 호숫가를 지나는 거미를 만나 거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자 거미가 말했다.
"저기 언덕만 넘어가면 꽃과 풀이 우거져 바람과 햇볕을 피할 곳이 많은데...
이때 그곳을 지나던 잠자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저 언덕 너머에는 모두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지.
" 거미와 잠자리의 말을 듣고 달팽이는 좋은날을 골라 언덕을 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이사를 하려니 귀찮기도 하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때 꿀벌이 이사를 돕기 위해 찾아왔다. 꿀벌이 함께 언덕을 넘어가자고 하자 달팽이가 말했다.
"안 되겠어. 오늘은 너무 햇볕이 강해. 가다가 말라 죽을 수도 있잖아." 이틀이 지나 이번에는 나비가 찾아왔다.
그러나 달팽이는 또 이사를 미뤘다.
"빠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못 가겠어."
또 이틀이 지나 잠자리가 찾아와 이제 언덕을 넘자고 재촉했다. 마침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에 달팽이는 "비가 멈추면 가도록 하자."라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 후 누구도 달팽이의 이사를 도우러 찾아오지 않았고, 혼자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은 달팽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몸이 약해서 탈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저기 언덕을 넘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해 행복하게 살았을 덴데."
뤼더화, <호숫가의 달팽이>
두려움이 발동하면 에너지는 급격히 소진된다. 사람은 자신이 위험 하다고 인식할 때는 일단 불을 끄는 데 올인 한다. 두려움 안에 있을 때는 자동적으로 에너지의 99퍼센트를 자신을 위해 쓴다. 일단 내가 살아야 하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그렇기에 교실에서 두려움의 에너지로 교실을 여는 선생님은 99퍼센트의 에너지를 자신을 보호하는 데 쓰느라 남아 있는 에너지가 1퍼센트다. 그 1퍼센트의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쓰니 아이들과 소통이 어렵다. 더군다나 양육자가 그런 상태라면 어떨까? 그렇게 아이의 소중한 어린 시절이 지나간다.무의식적인 두려움의 에너지는 교사나 부모의 양육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학부모 상담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한 장씩 건네주고 말했다.
"애들아, 다음 주부터 학부모 상담 주간인데 혹시 전생님이 도와주 었으면 하는 것, 부모님께 평소 말하지 못했지만 힘든 점 있으면 써줄래? 단 비밀은 지켜줄게. 너희들에게 들었다고 안하고 선생님이 참고 해서 상담할게!" 포스트잇을 걷어 한 장 한 장 아이 속마음을 읽다 보면 내 마음이 답답해지고 조여지는 듯 안타깝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같은 이야기 를 한다. '학원을 너무 많이 다녀서 힘들다. 학원 좀 줄였으면 좋겠다.? '더 많이 놀고 싶다.' '할 일이 많아서 피곤하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좀 줄였으면 좋겠다. 엄마의 잔소리가 힘들다.' 아이가 몇 살이건 학원 문제'가 고민의 대다수다.
그런 답을 한 아이의 어머니께 넌지시 "O O가 학원이 많아서 많이 힘들대요. 학원을 줄이고 마음이 행복한 경험을 더 많이 주었으면 해요.” "그래요? 저한테는 그런 말 안하는데...” 아이들의 이런 메시지를 나는 중요한 심리적 단서라고 보았지만,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어머니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교육을 할 때도 비슷하다. 나는 늘 어린 시절의 자존감이 평생의 힘이 된다고,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많이 대화하고, 경험의 폭을 넓히고, 많이 놀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학원에 가는 시간을 줄이고 대화, 놀이, 독서,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더 많이 하도록 안내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어머님들을 본다. 하지만 대부분 그때뿐이다. 집에 돌아가면 학원을 줄이지도, 더 많이 놀리지도, 더 많이 대화하지도 않는 듯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이성적으로는 그 이야기에 동의하더라도, 부모의 내면 깊은 곳에 불안과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편도체의 민감성을 부채질할 수 있다. 두려움이 뇌의 주도권을 가지면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작은 위험 요소를 확대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편도체가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불러오니 부모는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그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유난히 학원에 많이 다니는 아이의 양육자는 열정, 사랑이 많다기보다 유난히 두려움이 많을 수 있다.
특히 양육자 본인이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을 무의식에 더 많이 저장하고 있다면 이 양육자는 아이의 성취도나 태도를 쉽게 남과 비교해 실망하고 나아가 과도한 편도체 반응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쉽게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그 감정을 당장 해소 하고픈 욕구로 아이를 여러 곳의 학원에 보내고 아이의 내면의 욕구에는 둔감한 것이다. 이 때 다. 두려움이 일단 전두엽에 도달하면 뇌는 다른 긍정 반응, 해석을 중단하고 두려움의 해석을 시작한다.
"이렇게 공부를 못하면 뭘 해 먹고 살지?
"옆집 애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걱정이다!"
이제 양육자는 에너지를 양육자 자신을 보호하는데 99퍼센트 쓰고, 남은 1퍼센트로 아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당연히 아이 마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하느라 아이의 필요와 욕구에 둔감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양육자는 이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전에 두려움을 깨닫는다면 변화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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