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다양한 감정 세계를 담고 있어 독자에게 공감과 재미, 그리고 간접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도구로 널리 인정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령전기와 초등학교 시기에 걸쳐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 볼 수 있는 문해력 또한 함께 향상시킵니다. 실제로 미국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매일 수업에 그림책을 활용할 만큼 그 의존도가 높은 편인데요. 2016년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똑같은 내용의 그림책을 읽더라도 그 후에 감정 코칭 활동을 동반하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 조절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연구는 유치원 연령의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8주 동안 주 두번 그림책을 읽어준 뒤 그중 한 그룹에게만 추가적으로 이와 연계된 감정 활동을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감정 코칭을 함께 실시한 집단의 아이들은 그림책만 읽었던 아이들보다 통계적으로 정서 조절 능력과 또래 상호작용에 더욱 큰 성장을 보였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와 양육자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어떤 상호작용을 해나가는지가 그림책 내용 그 자체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요. 특히 그림책은 아이가 몸소 슬프거나 두려운 상황을 겪지 않더라도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해 간접적인 경험을 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에 위험 감수가 낮은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선택하는 이유
그림책을 활용해 사회정서학습을 진행하는 이들은 이만큼 흥미롭고, 공감이 쉬우며, 접근성이 좋은 교재는 없다고 단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는 글을 읽는 과정은 아이들이 타인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자신이 직접 경험할 때는 쉽게 표현하지 못한 생각 혹은 감정도 제 삼자의 입장에서는 더 날카롭게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감정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됩니다. 특히 습관적으로 코를 파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어야 하는 상황과 같이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그림책은 매우 훌륭한 교재가 되는데요. 예를 들어 손가락과 콧구명을 인격화해 유머러스하게 그 관계를 풀어낸<손가락과 코>그림책을 사용하면 아이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도 그릇된 행동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책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욱 다양한 환경과 인물을 표현하기 때문에 타인과 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유연성을 길러주기에도 유용합니다. 이를 창의적인 연계 활동, 역할 놀이, 쓰기와 토론으로 확장해 나가면 가치 교육 그 이상의 배움이 이루어져 '두 마리 토끼'를 잡듯 시너지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 감정 코칭 요령 1단계 - 등장인물에 집중하기
처음 그림책을 활용한 감정 코치를 시작할 때 가장 접근하기 좋은 소재는 바로 '등장인물'입니다. 아동 그림책은 주로 이야기의 첫 부분에는 배경과 인물에 대한 묘사, 중간에는 사건의 발생, 그리고 글의 끝에는 교훈이 담기는 구조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주인공의 성장에 공감을 일끌어내며 자연스럽게 마음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는 데요. 이때 사건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를 유추해 보거나 내가 만약 그 캐릭터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떠울리는 것처럼 직접적인 대입을 이끄는 질문을 사용하면 아이의 감정 인지력을 엿보는 기회가 됩니다. 예를 들어 미운 오리 새끼가 소외감을 느끼는 상황이나 의붓언니들이 신데렐라에게 질투를 느낀 장면을 소재로 아이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인데요. 친구의 이사, 반려동물과의 이별, 새 학기와 같이 아이의 일상에 큰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면 사전에 비슷한 내용을 담은 책을 미리 활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는 다가올 상황에 대한 준비를 수월히 해줄 뿐만 아니라 '나 외의 다른 사람도 이런 상황에서는 비슷한 마음을 느끼는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감정의 정당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가 그림책 내용에 공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면, 부모가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엄마도 <모모와 토토> 이야기처럼 친구가 좋아하는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친구가 좋아하는 색깔과 자주 사용하는 물건은 무엇인지 떠올려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어. 너는 친구 생일 선물을 고를 때 어떤 방법을 주로 사용하니?와 같은 책을 읽으며 나누는 대화는 아이에게 세상을 예습하는 것과 같은 경험입니다.
그림책 감정 코칭 요령 2단계 - 그림에 집중하기
그림책에서 매력적인 등장인물이나 흥미로운 글만큼 아이들의 몰입도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그림입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아이들이 읽는 책들은 살펴보면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데요. 아이가 긴 호흡의 글을 독립적으로 읽으면서부터는 그림이 생략된 책이나 장편의 글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그림을 활용한 대화 기회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책 속 그림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 않는 비언어적 표현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이를 불문하고 감정 살피기의 영감이 될 수 있는데요.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이 상황에 따라 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하거나, 글이 적힌 부분을 가리고 그림에만 의존해 내용을 파악해 보는 활동은 고학년 아이들, 더 나아가 성인에게까지 생각을 전환하는 경험이 됩니다. 특히 고학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래픽 노블(학습 만화)은 그림이 주가 된 콘텐츠일뿐더러 과장된 표정과 액션이 담겨 있기 때문에 훌륭한 대화 소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데요. 등장인물의 몸짓과 표정이 나타내는 감정선은 그대로 유지하되 말풍선 속 대사를 바꿔가며 '내 버전의 글쓰기'에 도전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이 됩니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족이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시청하고 해석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 도 추천합니다. 같은 그림 혹은 영상물의 한 장면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서술해 보는 시간은 미국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유독 인기가 많은데요. 상대의 생각을 듣다 보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비언어적 신호들을 알아차리게 되고, 같은 표정을 보고도 서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림책 감정 코칭 요령 3단계 - 상상주머니 열어주기
그림책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아마도 우리의 상상 주머니가 열리는 경험을 만들어준다는 점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이미 잘 알고 있 는 고전동화에서 배경, 인물, 문제, 해결, 교훈과 같이 세분화된 요소 를 살짝 변경하거나 이야기의 결말만 바꾼 장르인 '고전 동화 패러디' 는 아이들의 웃음을 보장해 주는 저의 단골 교재인데요. 이러한 작품 들은 작가의 시점에 따라 이야기가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에 타인의 관점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는 교훈을 주곤 합니다. 예를 들어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라는 책은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늑대의 시선으로 풀고 있는데요. 고전 이야기에서 돼지는 항상 두려움을 느끼는 약자로, 늑대는 악랄하고 포 기를 모르는 캐릭터로 그려진 것과는 상반된 관점이 매우 흥미롭습 니다. 아픈 할머니 늑대를 위해 양파를 빌리러 이웃을 찾았다가 재채기하는 바람에 오해를 샀다고 주장하는 이 책 속의 늑대는 강하고 무서운 모습보다는 웃기고 비굴한 인상을 풍기기까지 하는데요. 이 작품은 타인의 입장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 습니다. 그 외에도 "심청이가 임당수에 뛰어들었을 때 박태환 선수만 큼 수영을 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홍부와 놀부에서 알고 보니 놀부는 굉장히 성실하고 홍부는 게울렀다면 어땠을까?'와 같이 엉뚱 한 질문을 환용하면 책에 적힌 내용 그 이상으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분석하는 경험이 쌓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 이상의 깊은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데요. 책장에 적힌 글자 너머의 것을 탐구하도록 이끄는 그림책 활용 대화는 감정 인지와 분석 능력에 다채로운 자극이 되어줍니다.
그림책 감정 코칭 주의 사항
그림책을 활용한 감정 코칭은 다양한 마음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 주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이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책을 읽으며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 몰두해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거나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활동들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아이의 독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하는데요. 이는 감정 대화뿐만 아니라 어떠한 대화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이러한 활동들은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양, 그리고 수준에 맞추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아이의 기질과 발달 상태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처음 감정 동화책을 소개할 때는 기쁨, 슬픔, 화와 같이 아이가 현재 인지하는 주요 감정들을 주제로 한 그림책들을 선택하고 점차 질투나 부끄러움, 외로움과 같이 구체화된 마음을 다루는 책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을 추천하는데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감정을 다루는 책들을 몰아서 소개하는 것은 과유불급입니다. 또한, 부모가 적절한 주제의 책을 준비해 주되 그 안에서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 책을 사랑하는 아이,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눌 줄 아는 아이를 만듭니다.
<참고서적>
결국 해내는 아이는 정서 지능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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