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 불안의 문제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많은 사람에게 실시 하는 가장 기본적인 치료는 '정신치료'입니다. 상담과 대화를 통해 생각의 길을 바로잡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과연 상담과 대화로 치료가 될까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상상판으로 우리 뇌를 바꿀 수 있을까요? 뇌과학의 연구 초기만 해도 이는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자기 위로와 같은 효과일 뿐 실제로 뇌에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 알바로 파스쿠알 레오네 Aharo Pasoual-Leone 교수는 상상으로도 뇌가 변화될 수 있다는 가설 을 검증하고자 나섰습니다.
피아노를 전혀 배운 적이 없는 두 집단을 놓고 한 집단에는 '정신 훈련을, 다른 집단에는 '신체 훈련'을 시킵니다. 똑같은 악보를 주고 하루 두 시간씩 5일 동안 진행한 실험에서, '정신 훈련' 집단은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피아노 연주를 들었고, '신체 훈련' 집단은 실제로 피아노를 치면서 연습했습니다. 5일이 지난 후 놀랍게도 두 집단 모두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뇌에 변화가 일어났고 변화된 형태도 거의 같았습니다. 이는 상상, 생각만으로도 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한 연구입니다.
아이들의 신경 가소성은 어른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어른보다 더 빠르게 언어를 습득하고 운동 기능을 배우고 예술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 정서와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공감 능력 등도 빠르게 습득합니다. 그러한 학습 능력은 바로 관찰과 상상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유• 소아기 자녀를 둔 부모의 역할은 내 아이의 타고난 능력 이 잘 발현되도록 아이의 다양한 상상력과 관찰,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지지하고 지켜봐 줘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아이의 상상력을 통해 뇌를 자극 하게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말, 돈 캠벨이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책을 통해 모차르트의 음악이 지능 반달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내용이 크게 이슈가 되면서 많은 부모가 모차르트 앨범을 사기도 했습니다. 사실 모차르트의 음악과 지능 발달의 상관관계에 기능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많은 연구에서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배우는 것이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결론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은 우리 뇌에서 읽고, 쓰고, 설계, 공간 감각을 담당하는 두정엽과 운동 조절 중추인 전두엽을 자극하고 활성화시킵니다. 생각을 드로잉으로 그리면 뇌의 부위인 두정엽과 시지각관련 후두엽이 자극됩니다.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기 위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표현 할 수 있도록 지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성과 감성을 잘 조절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뇌와 생각을 담당하는 뇌를 연결 해 주는 조현기능은 뇌의 기능 중에서도 매우 중추적인 역할로 손꼽힙니다. 이러한 조현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가 싱귤레이 트, 우리말로 '대상회cingulate gyrus' 입니다. 싱귤레이트는 라틴어로 직역하면 '벨트'나 '띠'라는 뜻입니다. 뇌의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을 연결한다는 의미죠. 바로 이 조현 기능에 결함이 생기는 것을 '조현병'이라고 합니다.
대상회는 전두엽을 도와 충동성, 판단력, 목적지향성 등의 고위 인지 기능도 담당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인지나 조현 기능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대상회에 문제가 생기면 조현병뿐 아니라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우울증, 집중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중 ADID, 안정 정서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불안증 등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우리 뇌의 조현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취약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이든 이성이든 양극단으로 빠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은 감정적인 면을 잘 활용할 때 나오며, 이성적 생각 또한 감정의 지지를 통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또한 조현 기능이 제대로 발현되어야 지나친 감정의 동요나, 거친 표현을 억누르고 합리적인 판단과 적절한 행동을 하는 안정된 사회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그중 '평상심' 또는 '일상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바로 조현 기능이 잘 발현된 균형 잡힌 마음 상태, 여유를 가진 상태입니다. 살다 보면 극단적이고 아슬아슬한 감정 상태에 놓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금방 중심을 잡습니다. 이렇게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발달시키는 것이 대상회의 조현 기능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하는 대상회도 안정된 애착을 통해 중심을 잡고, 그 안정된 정서가 오래 지속되어야 조현 기능도 잘 발현될 수 있습니다.
시각, 미각, 촉각, 후각, 청각 중에서 영•유아 아이들에게 행복한 뇌를 만드는 자극은 무엇일까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아름다 운 것을 보았을 때? 이 자극들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보다 더 큰 행복 자극을 주는 것은 촉각을 통한 부모와 아이 간의 스킨십입니다. 우리는 흔히 뇌를 내장기관으로 이해하지만, 뇌는 발생학적으로 피부와 같은 조직에서 출발하여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뇌는 스킨십을 통한 촉감에 가장 민감합니다. 아기의 두뇌 발달에 가장 좋은 자극이 바로 부모와의 스킨십인 것입니다. 부모의따뜻하고 다정한 스킨십을 중해 아이는 안심히, 행복감을 느끼고, 부모와의 애착을 쌓는 첫걸음을 뗍니다.
애착이란 '엄마아빠는 나를 사랑해"라는 믿음을 넘어서 '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구나''다른 사람도 엄마아빠처럼 믿을 만할 거야라 는 신뢰를 심어 주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안정감 있는 사랑을 일관되고 충분히 받아 부모와의 애착이 단단하게 맺어질수록 타인과 관계를 잘 맺을 용기를 얻게 되고, 세상에 나아가 독립된 존재로 잘 성장할 자양분이 되면서 사회성도 발달합니다. 따라서 애착은 뇌 발달과 인성 발달에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부재하거나 학대를 당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애착 장애입니다. 이러 한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쉽게 안기고 따라가거나, 반대로 극도로 회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너무 쉽게 의존하거나, 너무 두려워 도망치는 양극단의 모습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애착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수치가 낮았습니다. 이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애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렸을 때 애착 장애를 갖게 된 아이는, 이후 일반 가정으로 입양되어 돌봄과 사랑을 받더라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합니다. 물론 꾸준한 도움과 케어, 장기간 안정적인 치료를 받으면 서서히 회복됩니다. 옥시토신은 유독 포유류에게서 그 효과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젖을 먹여 키우는 포유류가 갖게 되는 모성이 바로 이 옥시토신 호르몬과 관계된다는 가설이 만들어집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받는 사랑이 부모로부터의 사랑이기에 옥시토신은 행복 호르몬 중에 서도 가장 중요한 호르몬으로 손꼽힙니다. 옥시토신은 두 가지 주요 상황에서 주로 분비됩니다. 스킨십을 많이 하는 대상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첫 번째는 연인 또는 부부가 스킨십을 할 때, 특히 부부관계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는 동안 뇌 안에서 방출량이 많이 늘어납니다. 두 번째는 부모가 아이를 낳아 기를 때, 특히 엄마가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 가장 활성화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도 방출량이 많아집니다. 이것이 모성애의 기초를 이루는 생물학적 요소가 될 수 있겠죠. 부성애는 어떨까요? 엄마가 자녀를 출산할 즈음에 아빠의 옥시토신 호르몬도 활성화됩니다. 이 호르몬이 아빠의 책임감을 자극하고 양육 분담을 적극적으로 하게 합니다.
최근에는 뇌의 발달 문제로 애착에 어려움을 보이는 아이들, 특히 자페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옥시토신을 적용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외부에서 호르몬을 주입하는 것에 관한 연구와 뇌 안의 호르몬 생성과 촉진에 관한 연구가 병행되고 있는데, 그만큼 옥시토신의 역할이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고 애착과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따뜻하고 편안하고 믿을 만한 곳이 아니라 외롭고 황량하며 적대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짜증이 많고 위축된 상태로 자랄 수 있습니다. 이는 청소년기 이 후 우울증의 발생 비율을 높이기도 하는데, 실제로 우울증 발병이 잦은 아이들을 검사한 결과 뇌의 변연계가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독립된 개체로 잘 세워지길 바라나요? 엄마아빠를 온전히 믿고 잘 따라주길 바라나요? 아이가 청소년기의 위기를 잘 이겨 내길 바라나요? 그렇다면 아이를 자주 안아 주세요.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은 아이가 어릴 때만이 아니라 청소년이 되어서도 필요한 영양분입니다. 변연계의 강화는 향후 우율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선생님에게서 받았던 이런 다정한 손길이 기억에 남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위축될 때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저에게 칭찬을 건네며 따뜻한 미소와 함께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선생님의 손길을 떠올리며 힘을 내고는 합니다. 아이가 자랄수록 스킨십을 거부한다는 부모가 많은데, 손잡고 함께 산책하거나 등을 토닥이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가만히 안아 주는 것 모두 안정감을 주는 스킨십입니다. 하다못해 하이파이브라도 자주 하세요. 다정한 눈빛과 표정, 다정한 말도 잊지 마세요. 아이가 힘들어할 때,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불안해할 때 아이의 변연계는 위축되어 있습니다. 이때 부드럽게 안아 주거나 등을 토닥 이는 가벼운 스킨십과 함께 “수고했어","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건네 보세요. 스킨십이 동반된 정서적인 위로는 변연계의 긴장을 풀고 아이들에게 더 강한 의욕, 동기를 불어 넣어 어려움을 닫고 일어나게 해 줍니다.
간혹 자녀가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었는데, 어릴 때 애착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부족한 점을 깨달은 시점부터라도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적절한 스킨십을 시도해서 채워 주면 애착 형성에 도움이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