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부모는 아이가 36개월이 되었을 때 책에다 꿀을 묻힌 다음 아이에게 핥게 하면서 "학문은 이 꿀처럼 달콤한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학문을 함으로써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를 더 선하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고 아이에게 주지시키는 것이다. 유대인은 일생 끊임없이 시간을 아껴 진리를 발굴하고 인류에게 공헌해야 한다는 삶의 목표를 가슴속에 간직한다. 이것이 높은 이상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유대인을 배출하는 정신적 뿌리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은 아이를 대상으로 한뜻이 깊이 있는 경전을 토대로 집중교육을 시킨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아이는 매우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대화를 통해 남을 설득하는 방법, 거절하는 방법, 격려하는 방법 등을 배우고 익히며 성장한다. 이렇게 성장하는 아이는 단체생활을 배우고 잘 짜인 사회구조 속에서 행동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다른 아이와 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도 배운다. 더불어 사회적인 규칙을 알게 되어 거기에 맞추어 자기를 표현하기도 한다.
유대인 부모는 아이를 돌봐야 할 책임을 다하면서 아이 스스로가 잠재력을 펼쳐 성장할 수 있게 자율성을 부여한다.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더욱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독립심을 키우며 인성교육에 중점을 둔다. 부모는 해결사가 아닌 아이의 꿈을 지지하는 지지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을까? 친구들과의 함께 할 때 어려움을 겪는 아이도 많아지고 어른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학교를 싫어하는 아이,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 학교를 믿지 못하는 부모 생겨났다. 우리의 교육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습지를 하고, 집에 와서도 풀고, 학원에서 가서도 학습지를 푼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이런 학습지의 영향은 좋은 것일까?
캐나다에서도 구몬 학습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수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생님이 잠깐 설명하고 숙제를 내주고 다음에 와서 숙제를 채점하고 또 잠깐 설명하고 숙제를 내주는 형식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구몬학습지는 숙제가 없다. 대신 단원에 필요한 원리를 설명해 주고 주어진 시간에 다양한 방식의 경험을 통해 원리를 습득하고 끝난다. 다음 주에 검사할 숙제는 없다. 왜 같은 교육 기관에서 다른 학습 형태로 교육하고 있을까? 그건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독일에서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숫자 1을 배우기 위해 3개월이 넘도록 1을 가르치고 숫자 10까지 배우는 데는 1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아이들에게 숫자의 원리와 활동을 통해 익히고 배우게 한다. 이렇게 선진국의 교육은 천천히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는 아이들에게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배우는 주입식 교육을 선호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주입식 교육은 빠르게 알게 되지만 수많은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제때 교육하고 선행이 안 좋다고 말하지만 다른아이는 다하는데 우리 아이만 못해서 못 따라갈까 봐 걱정하게 된다. 그러면 불안해지고 불안하기 때문에 결국 부모님도 다른 아이를 따라가거나 여건이 된다면 다른 나라로 떠나는 분위기이다.
우리나라 아이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우리나라 부모 이대로 괜찮을까?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이제 우리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 새로 시작할 때인 것 같다. 반성하고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선진화된 수많은 나라에서는 반성하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고 개혁했었다. 독일도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이성적 사고에 의한 학살이었음을 반성했다. 그리고 스파르타식 교육에서 지금처럼 경험과 감성을 아이들에게 배울 기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발도르프 교육한다. 핀란드도 더 이상 아이들을 똑같이 길러내는 반복적인 학습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변화하면서 선진국가가 되었다. 우리도 아이들에게 즐겁게 행복하게 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 빨리 지치지 않고 공부를 노동처럼 느끼지 않도록 천천히 경험으로 느끼고 익히며 배우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운다는 것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임을 알게 되면 우리의 뇌는 몰입을 하게 된다. 조금 천천히 교육하자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공부는 스스로 하게 되어 있다. 아이를 믿고 재미있게 천천히 교육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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