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엄마들 중에는 아이의 마음 상태를 직관적으로 정확히 알아 낼 수 있는 능력이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낮을 사람들이 있다. 아이의 마음 상태를 잘 읽어내는 엄마는 아이의 행위에 대해서 적절히 대응해준다. 즉, 아기가 배가 고파 울 때 음식을 주고 기저귀가 젖어서 울 때는 기저귀를 갈아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엄마는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기저귀를 갈아주고 만다. 참고로 이러한 능력은 엄마의 지능이나 교육수준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똑똑한 여자라고 해서 적절히 대응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무식한 여자라 해서 능력이 모자랄 것이라고 단정지어서도 안 된다. 이는 그저 공감능력의 개인차일 뿐이다.
런던대학의 엘리자베스 마인스Elizabeth Meins 교수는 이러한 두 유형의 엄마에게서 자란 아이들을 비교해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아이들이 만 2세가 되었을 때 비교해보니, 아기의 마음 상태를 잘 읽어내는 능력을 지닌 엄마를 둔 아이들의 언어능력과 놀이기술이 월등하게 뛰어났다. 한편,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흥미 있는 뇌영상 연구도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와 엄마에 대해 생각할 때 활성화하는 뇌의 부위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피험자들에게 2개의 단어를 짝지어 제시하면서 한 조건에서는 자기 자신과 어느 것이 더 관련성이 높은지를 고르게 하고 또 다른 조건에서는 자신의 엄마와 더 관련성이 높은 단어를 고르게 하고, 또 다른 조건(통제조건)에서는 특정한 알파벳이 있는 단어를 고르게 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와 엄마에 대해 생각할 때 뇌의 같은 부위를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의 뇌 깊은 곳에는 이처럼 엄마와 나를 동일시하는 기제가 자리잡고 있다.
엄마는 나의 일부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결론 부분에서 윌리엄 제임스가 90년 전에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우리의 일부가 사라진다. 만약 엄마가 무언가를 잘 못했다면 내가 부끄러워진다. 만약 엄마가 모욕을 당한다면 마치 내가 모욕당한 것과 마잔가지로 느낀다."
할로우의 엣 논문과 최근 뇌과학의 논문들을 읽으면서 나는 톨스토이의 소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보살피는 마음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살아간다. 내가 인간이 되고 나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내 자신의 일을 여러 가지로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살아가는 것도 모두가 각자 자신의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 사이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나는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만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사실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 하느 님은 사랑이시다 "
-톨스토이의 소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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