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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 빠진 아이가 힘들어하는 '이것'

by lowen 2024. 6. 25.

 

 

스마트폰에 빠져버린 아이들

엄마는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다. 아이가 자꾸 칭얼 거리자 자신의 스마트 폰을 꺼네 아이 앞에 놓아 준다. 칭얼대던 아이는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깔깔대며 웃기까지 한다. 뭐가 저리 재미있어 깔깔거리고 웃을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단순한 만화영화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던 것. 엄마는 동영상이 끝날 때마다 다시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 되었다. 이제 아이는 일하느라 오랜시간 보지 못한 부모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모가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애타게 보고싶어 기다리는 아이까지 있을 정도다. 걷기 전 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해져버린 아이들, 스마트폰은 이제 아이의 놀이 욕구도 바꿔놓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스마트 폰속에서 게임하며 만나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남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들

밖에서 놀지 않는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의지를 많이 한다. 이렇게 스마트폰에 길들여지는 아이, 문제는 없을까? 임상심리학자인 콕스는 "이야기를 읽고 듣는 경우과 달리 쉴 새 없이 퍼붓는 미디어 자극은 깊이 있는 청취 능력이나 폭넓은 감정 표현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는 타인과 얼굴을 마주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지능과 감성이 퇴화된다고 경고한다. 생각하는 힘이 떨어질 뿐 아니라 매사에 쉽게 싫증과 짜증을 내는 경우도 많아진다. 스마트폰의 현란한 미디어 자극은 아이들의 시선을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아이는 순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몰입이 아닌 그저 홀리는 것일 뿐이다. 시선은 고정되어 있어 집중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두뇌는 단순한 반사작용만 거듭한다. 때문에 온라인 세계에 길들여지면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주의력 결핍에 빠지기 쉽다.  요즘은 ADHD 아이, 산만한 아이, 인내심이 없는 아이가 자제력이 부족한 아이가 많아지고 있다. 얼마전 금쪽이에서 이렇게 미디어와 소통을 했던 아이는 부모와 소통에서도 로봇이 말하듯이 이야기 하는 문제점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스마트폰과 미디어는 아이들이 사람과의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람과의 소통은 기계가 아닌 사람과 이야기를 많이 했던 아이들이 잘 할 수있다. 아이의 첫 번째 소통을 하는 사람은 부모다. 부모는 아이에게 소통을 제일 처음 알려주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점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어린이들의 보호를 위한 미디어 국가적 제한 정책 시행

미국 플로리다주가"SNS는 여러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해를 끼친다"며 "하루 종일 기계에 파묻혀 있는 것은 아이들 성장과 교육에 있어서 최선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4세 미만 미성년자의 사회관계밍 서비스(SNS)계정 보유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 법안은 14세 미만 어린이가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계정을 폐쇄하고 수집한 개인 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해야 한다. 14~15세 청소년이 보유하는 계정의 경우도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계정을 삭제해야 한다. 해당 법은 구체적인 SNS기업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다만 무한 스크롤을 제고아고 '좋아요'같은 반응 지표를 표시하며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드 중독적인 시청을 조정하는 모든 SNS플랫폼에 적용된다. 

아동에게 미디어 노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확산 중인 가운데,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A)주에서 14세 미만 어린이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계정 보유 금지법이 추진됩니다. 또한 14~15세 청소년은 부모 동의를 받아야만 SNS  계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멀리나우스카스 주총리는 SNS기업들이 아동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독성'있는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아동들이 불법 콘텐츠와 사이버 불링(괴롭힘)에 노출 될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어린이 스마트폰 사용 금지 추진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느 스마트 폰을 금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서는 교사가 스마트 폰을 압수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또한 아동, 청소년 스마트폰 문제로 인해 16세 미만 까지 판매도 금지하는 법안도 검토 중입니다.  등교 후 하교할 때까지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 모두 휴대폰 사용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구체적인 지침은 학교장이 선별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교사노조들은 이미 대부분의 학교가 시행중이며, 학생의 휴대전화 사용자체보다 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의 각종 폭력이나 불법 콘텐츠를 규제해달라느 입장이다. 영국 더타임스는"학교가 모바일을 금비할 수 있는 큰 권한을 갖게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이 숨겼을 수도 있는 휴대전화를 가방에서 찾아볼 수 있고, 교내에서 몰수할 수도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학부모가 휴대폰 관련 문제로 교사를 고소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보호정책을 제공할 전망이다.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가 3세 미만 유아의 영상 시창과 13세 미만 어린이의 스마트폰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겸토 중이여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 엘리제궁의어린이 스마트폰 제한 지침과 관련한 연구 용역을 위탁받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최근 제출해다. 앞서 에미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1월 "어린이들의 영상 시청과 스마트폰 사용에 금지나 제한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보고서에서는 3세 미만 영.유아의 경우 TV를 포함한 영상 시청을 전면 금지하고 3~6세 사이 어린이는 교육적인 콘텐츠를 성인이 동반했을 때만 시청하도록 제한해야 한다는 냉용이 담겼다. 휴대전화 사용은 윤리적인 SNS에 한정해 15세부터 허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제안을 내놓은 전문가 그룹은 신경학자의 중독 전문 정신과 의사등 총 10명으로 구성됐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국가마다 아이들의 보호하기 위한 스마트폰 정책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우리도 하루 빨리 스마트폰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하다. 

 

상호작용 가능한 놀이가 최고의 선물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것은 실제 살아있는 경험이다.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아 보고 소리도 들어 볼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아이가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표정을 읽고 상호 작용하는 것, 울퉁불퉁한 물건을 만지작거리고 그 질감을 느끼는 것, 공간을 탐색하면서 신체 감각을 익히는 것, 자연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관찰하고 맘껏 상상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아이 의 인성교육에 필요한 자양분이자, 창의성과 사회서을 증진시키는 밑거름이다. 지금 이 순간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스마트폰을 달라고 떼쓰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물과 대화하고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일이다.

 


엄마 놀이 & 아빠 놀이, 아이에게는 모두 필요하다

놀이를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아이의 시선을 끌 놀잇감도,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특별한 장소도 아니다. 물론 아이가 선택 할 수 있는 좋은 놀잇감과 장소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놀이를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놀이를 함께 즐길 놀이 상대다. 놀이는 무엇을 가지고 어디에 서 노느나보다 누구와 어떻게 노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놀이 상대 즉, 친구가 없다면 놀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 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친구는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나 누고, 타협과 양보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존재다. 때문에 이런 존재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들은 더 많은 놀이를 경험하게 되고 그만큼 많은 것들을 얻게 된다. 때문에 가정에서도 엄마만 함께 놀아주는 것보다 아빠까지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발달에 더 많은 도움을 준다. 아이의 놀이를 지켜보고 좋은 장난감을 사줬 다고 해서 아이와 놀아준 것은 절대 아니다. 아이는 부모가 단순히 옆에 있 어줬을 뿐 자신과 놀아준 친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논다는 것은 아이와 실제 말로 행도으로 주고받기 즉,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빠나 엄마가 각자 스마트폰을 하면서 아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놀이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은 시간이지만 아이 와 상호작용을 충분히 해주는 것이 좋은 친구의 역할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아이의 본능과도 같기 때문에 놀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때 그것을 풀어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특별한 시간에 부모가 선택적으로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놀고 싶을 때라면 언제든지 엄마, 아빠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회가 핵가족 화되면서 가정 내에서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부모들의 교육열로 노는 아이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이 누군가와 소통하고 타협하며 배울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엄마와 1:1 놀이 만을 즐기는 아이들의 놀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엄마와 다른 성향의 아빠라는 친구를 한 명 더 얻게 된다면, 아이는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놀아주는 것은 엄마나 아빠가 다 똑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는 표현하는 대화방식이 다르고, 신체접촉의 방법이 다르고, 주고받는 강도가 다르다. 엄마에게서 배 울수 없었던 것들을 아빠에게서, 또 아빠에게서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엄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가정 내에서 엄마와 아빠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여러 가지 다양한 장난감을 제공하는 것보다 훨 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서적>

놀이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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