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춘기가 찾아 왔을때 왜 부모와 아이의 갈등이 심해질까?
사춘기는 아이와 부모 모두를 힘들게 만드는 시련의 시기입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심각하게 자아를 고민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아를 찾기 시작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부정하며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런 사춘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간혹 반항은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던 아이가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기 때문입니다. 변덕스럽기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수시로 기분이 바뀌어 어느 장단에 숨을 춰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예민한 대로 예민해진 아이의 눈치를 살피느라 부모도 숨이 막 힙니다. 부모로선 그 어느 때보다 아이의 기분을 살피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힘들겠지만 사춘기 때의 감정코칭은 더더욱 중요 합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야, 슈퍼에 가서 참기름 사고, 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편지봉투 하나만 사다줘."
심부름을 시키면 초등학교 때처럼 냉큼 일어나지도 않지만 기꺼이 심부름을 가도 제대로 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참기름만 달랑 사가지고 오든지, 문방구에서 편지봉투만 사고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옵니다. 엄마는 어이가 없어 "아니, 그새 까먹었냐?" 하고 한마디 하면, 아이는 당장 씩씩거리며 난리가 나 겠지요. 부모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도 아닌데 금방 이야기한 것을 잊어버리고 겨우 심부름 한 가지만 하고 오는지 도통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혹시 일부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이 일부러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의 뇌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청소년의 뇌는 아동의 뇌나 어른의 뇌와는 다릅니다. 생각하고 말단하는 뇌는 '전두엽' 입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두엽은 13~14세에 어느 정도 틀이 잡히고, 이후는 단지 경험이 누적될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두엽이 사춘기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3~14세 때까지 어느 정도 발달했던 전두엽이 새롭게 재구축된다는 얘기입니다. 리모델링을 하는 건물을 들여다보면 사춘기의 뇌가 어떤 모양일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건물은 영망진창입니다. 여기저기 건축 자재들이 널려져 있고, 리모델링을 하느라 군데군데 부서진 곳이 많습니다. 두뇌 전선은 당연히 이어져 있지 않아 리모델링을 마치기 전까지는 다면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판단하거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미리 예측해 계획을 세우는 등의 일을 어려워합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청소년의 뇌입니다. 그러니 한 번에 한 가지라도 처리하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엉뚱한 행동은 대부분 전두엽이 한창 리모델링 중이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청소년들의 전두엽은 어떤 의미에선 초등학생의 전두엽만도 못합니다. 초등학생의 전두엽은 비록 간단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공사 중은 아니어서 안정감이 있습니다. 적어도 학교에 늦지 않게 가야 하고, 선생님 만씀을 잘 들어야 하며,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쯤은 이성적으로 압니다. 하지만 청소년의 전두엽은 전선이 채 연결되지도 않은 어수선한 상태라 이성적 판단이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청소년의 체격이 이미 어른만큼이나 크고 성숙해 보인다고 판단력도 성숙한 것이라 착각합니다. 몸은 이미 어른만큼 컸으니 당연히 생각도 어른만큼 할 수 있다고 민지만 두뇌는 아직 미완성이라는 뜻입니다. 청소년과의 갈등은 대부분 이런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청소년의 뇌를 이해하기만 해도 청소년의 행동을 한결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감정의 뇌'가 전두엽 확대 리모델링을 주관한다
초등학교 4~5학년까지 형성된 전두엽은 아파트로 치면 약 20평 정도입니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숙제하고, 약속을 지키고, 심부름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갖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른들의 복잡다단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인간관계를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어떻게 리모델링을 하느냐에 따라 30평짜리 집도 될 수 있고, 50~60평짜리도 될 수 있으며, 100평짜리도 될 수 있습니다. 이왕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라면 널찍하고 튼튼한 건물로 만드는 게 좋습니다. 이때는 두뇌의 회백질이 1년에 두 배로 늘 정도로 매일 새로운 뉴런이 생성되었다가 경험으로 강화된 것은 남고 사용하지 않은 뉴런은 소멸합니다. 그러니까 양질의 좋은 경험을 긍정적으로 강화하면 널찍하고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최소 50년에서 길게는 80년을 더 살아야 하니, 앞으로의 인생을 즐겁고 쾌적하게 살려면 제대로 리모델링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좋은 재료는 양질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학교 공부뿐 아니라 좋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하거나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것 등은 모두 청소년기에 해보면 좋은 경험입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거나 각종 캠프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할 때 긍정적인 감정으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억지로 공부하고, 무서운 기합과 꾸지람을 받아가며 운동을 해야 한다거나, 콩쿠르나 경시대회에서 낙선한 부끄러움과 패배감의 경험이 결부되어 기억된다면, 훗날 비슷한 상황이 오면 도피하고 싶고 꺼려 지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전두엽이 미숙한 반면 감정의 뇌는 매우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공포, 불안, 수치심, 죄책 감 등의 심리적 상처에 노출되기 쉽고 취약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뇌에는 약 1천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이 있습니다. 이 뉴런은 감각적인 정험을 해야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합니다. 다양 한 경험을 통해 자극을 받으면 뉴런은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와 접촉하는 '시냅스' 라는 곳에 연결되면서 활동이 시작됩니다. 1천억 개의 뉴런을 활성화시키려면 그만큼 충분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자극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많은 뉴런은 다 사용되지 못하고 결국 퇴화해 소 멸됩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면서 감정의 뇌를 발달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한창 감정의 뇌를 발달시켜야 할 중요한 시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쏟습니다. 공부가 최대 목표이 자 과제입니다. 그렇다 보니 여행을 간다든지, 친구들과 논다든지, 하다못 해 마음 편히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시간조차 없습니다. 감정의 뇌를 자극할 만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입니다. 대인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감정이 격할 때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배울 기회가 없으니 그 부분의 뉴런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공부만 열심히 한 아이들은 공부 외의 다른 경험이 없으니 리모델링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변덕이 죽 끓는 듯해도 다 받아줘라
청소년들의 감정은 기복이 아주 심합니다. 조금만 기분이 좋으면 들떠 어쩔 줄 모르다가도 조금만 기분이 나쁘면 죽고 싶다고 울고불고 합니다. 10분 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게 청소년의 마음입니다. 좋아하는 여자친 구한테 전화가 오면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모르다가 조금 뒤 다른 애가 화해서 "그 애, 영철이를 더 좋아한다던데!?' 하고 한마디 하면 바로 지옥에 라도 떨어진 듯 괴로워합니다. 어떤 감정이든 다 받아주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아는 부모도 변덕이 죽 끓 듯 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감정은 감당하기 어려워합니다. 10분도 채 안 돼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가는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하고 짜증도 나지요. 청소년들이 감정 기복이 심한 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정의 뇌가 한창 활발하게 발달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사춘기 때는 감정 조절 역할을 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덜 나와서 그렇기도 합니다. 감정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데 작용합니다. 청소년들은 아동과 성인에 비해 세로토닌이 약 40퍼센트 정도 덜 나온다고 합니다. 일반 성인의 경우 세로토닌이 평소보다 40퍼센트 정도 덜 나오 면 우울증, 불안증 환자로 봅니다. 그러니 청소년들의 감정이 쉽게 불안정하고 기복이 심한 것입니다. 이처럼 청소년과 호르몬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면 감정 공감을 하기도 쉽 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세로토닌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자주 짜증을 내고 화를 내거나 우울해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편안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이의 변덕스러운 감정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고 공감해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이 봤을 때 별것 아닌 일로 심하게 짜증을 부려도 "넌 왜 별것도 아닌 일로 신경질이야" 하고 나무라면 안 됩니다. 사춘기 청소년 입장에선 변덕스럽고 감정이 격한 것이 정상입니다. 이를 인정 해주면 감정적으로도 편안해지고, 감정의 뇌가 안정적이면 전두엽이 활성화됩니다.
시춘기의 잠을 이해하라
청소년에게 있어 잠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모와 사춘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잠' 입니다.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절 대적으로 잠잘 시간이 부족하지만, 공부해야 할 시간에 비몽사몽 졸고 있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학교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가 너무 많습니다. 아에 대놓고 엎드려 자는 아이도 적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자는 아이가 너무 많아 그 아이들을 일일이 깨우다 보면 수업 진행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춘기 청소년들은 하루 평균 9시간 15분은 자야 정상적인 뇌 활동이 가능하다. 영유아기 때 잠이 많이 필요했던 것처럼 사춘기에도 아동이나 성인에 비해 수면이 더 필요한 것이다. 두뇌에 도로망이 제대로 건설되려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데,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부실 공사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립니다.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중학생들도 하루 6시간 이상 자기가 어렵습니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9시간 15분의 수면 시간보다 3시간 이상 못 자니, 늘 잠이 부족해 몸 도 마음도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잠이 부족하면 우울해지고 짜증이 나며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또한 스트레스도 잘 받고 감정 조절도 더 안 됩니다. 가뜩이나 청소년은 세로토닌이 부족해 감정의 기복이 심한데, 잠까지 부족하니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청소년들은 아침잠이 특히 많습니다. 밤에는 그런대로 말똥말똥하던 아이들도 이른 아침에는 맥을 못 춥니다. 전 세계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청소년들의 수면 생체 리듬' 을 연구했습니다. 외부의 햇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시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도록 한 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청소년이 '새벽 3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낮 12시'에 일어났습니다. 청소년들이 가장 쾌적하게 느끼는 수면 주기가 새벽 3시부터 낮 12시라는 얘기입니다. 성인이 되면 수면 주기는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청소년들이 아침잠이 많은 것 역시 그들만의 정상적인 신체 리듬으로 봐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구조적 생리적으로 잠을 많이 자야 하고, 특히 아침잠이 많다는 점을 이해하면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침에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는 아이는 드뭅니다. 몇 번씩 깨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깨우다 화가 나서 부모가 소리라도 지르면 온갖 짜증을 내며 겨우 일어납니다. 청소년의 잠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공부도 안 하는 애가 웬 잠이 이렇게 많아", "너 어젯밤에 또 늦게까지 컴퓨터했지?", "대체 넌 언제 철들래?", "에그, 잠이 원수다. 원수"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잠이 부족해 늘 피곤하고 짜증이 나는 자녀의 마음을 읽어줘야 합 니다. '"많이 피곤하지?", 더 자고 싶지? 엄마도 너만 할 때는 잠이 너무 많아 늘 고민이었어" 하고 말해준다면, 질풍노도와도 같은 아이의 마음이 한 결 누그러지고 편안해질 것입니다.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한다
청소년들은 전두엽이 공사 중인 상태라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잘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어떤 것이든 일단 감정의 뇌를 통해 전두엽에 기억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몸으로 직접 부딪치면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 가 장 효과적입니다. 삶의 경험이 많은 어른들의 눈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때 어느 방향으 로 가는 것이 좋을지 보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 어떻게 해서든 말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해주어도 아이들은 듣지 않습니다. 아니, 듣지 않는다기보다는 청소년 뇌의 특성상 듣지 못한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미국에서 신생아의 3분의 1 정도가 미혼 여성들에게서 태어납니다. 또한 청소년이 임신해서 미혼모가 되는 경우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정부로선 미혼모와 그의 아기를 보살피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고, 그래서 미혼모 출산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실시했습니다. 피임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보상 정책을 폈지만 별효과가 없었습니 다. 그런데 청소년들에게 직접 아기를 키워보는 체험을 하게 했더니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진짜 아기와 같이 프로그래밍된 아기를 주고 키워보게 했습 니다. 청소년들은 아기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수업 시간에 아기가 울어 수업도 못 듣는 등 고생을 해보고 나서야 아기 키우는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어른들이 아무리 미혼모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말해줘도 듣지 않던 아이들이 한 번 체험을 한 뒤 달라진 것입니다.
청소년기의 뇌는 시냅스가 너무 많아 다면적 사고를 하지 못합니다. 한 번에 하나씩밖에 생각을 못하고, 그나마도 서로 연결을 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체험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어봐야 비로소 여러 가지를 서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이들은 모든 경험을 감정 차원으로 기억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좋은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들도 있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좋지 않은 느낌으로 기억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하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는 경험입니다. 좋은 느낌으로 기억된 경험은 평생을 갑니다. 청소년기의 즐겁고 좋았던 체험은 평생 훌륭한 자양분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랜 기간 피아노 연주 연습올 하는 전공자들 중에는 피아노와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하나같이 피아노리면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창 시절 피아노를 쳤던 경험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건반 하나 잘 못 치면 "그렇게 밖에 못 치느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연습을 게을리하면 또 혼이 났습니다.
부모가 주는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피아노를 치려면 돈이 많이 들기에 원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도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피아노를 전공 하는 아이를 뒷바라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부모는 아이가 피아노를 열심히 치지 않으면 불쾌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너 피아노 가르치느라 돈을 얼마나 쏟아 붓고 있는데, 이러면 되 니?", "너 때문에 지금껏 좋은 차도 못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고생하는 데, 더 열심히 피아노를 쳐야 하지 않니?" 아이가 이런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를 쳤다면, 당연히 당시의 기억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꾸역꾸역 피아노를 쳐서 대학은 들어가도 진정으로 피아노를 즐기지는 못합니다. 어떤 경우는 '피아노 연습이 잘 안 될 때는 마치 피아노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피아노를 망치로 부수고 싶다"고 격한 감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부모의 욕심에 의해 일방적으로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피아노만 보면 구역질이 난다는 어느 피아노 전공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즐겁지 않은 기억은 거부감만 키울 뿐입니다.
매니저가 아닌 컨설턴트로 다가간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종합 매니저(관리자)를 자청하고 나섭니다. 아이가 혼자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을 불안해하며, 학업은 물론 건강과 친구 관계까지 도맡아 관리합니다. 사춘기 이전에는 매니저 역할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 더 이상 매니저 역할은 불가능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관리를 받는 것을 거부하며,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의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감정코칭이 가능합니다. 사춘기 때는 매니저가 아닌 컨설턴트로 아이에게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충분히 들어주고, 때에 따라서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도 해주는 등 믿을 만한 컨설턴트로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아이의 사생활을 인정한다
집을 리모델링하는 어수선한 상태에 누군가 찾아온다면 반가울 수만은 없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자꾸 자기만의 공간에 숨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창 전두엽을 리모델링하는 어수선한 상황이라 아이들은 집에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부모 형제가 들어오는 것도 꺼리는 것입니다. 매니저로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뚫고 있던 부모가 아이의 이런 변화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지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혹시 뭔가 나쁜 짓을 하다가 감추려는 것인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와의 관계는 멀어집니다. 아이의 휴대전화 문자를 몰래 훔쳐보거나 통화할 때 엿듣는 행위는 아이의 분노를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런 일이 한 두번 되풀이되다 보면 부모와 아이의 사이는 멀어집니다. 따라서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아이가 원할 때만 컨설턴트로 나서 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의 인격을 존중한다
꼭 사춘기가 아니더라도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사춘기 청소년들은 자아가 특히 강하기 때문에 인격적인 공격을 받으면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는 점에서 더욱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아이의 잘못까지 그냥 넘어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잘못을 지적할 때도 감정코칭의 기본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감정은 받아주면서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짚어주면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인격이나 성격에 대한 비판은 피하고,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요청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방이 지저분할 때 "네 방은 돼지우리 같구나. 정신 상태가 이 모양이니 공부를 잘할 수 있겠어? 어휴, 저 사과 꼭지는 지난주에 먹고 버린 것 아니니? 도대체 넌 어떻게 된 애가 옷을 그냥 벗어놓기만 하고 치우질 않 는 거니?" 하고 말한다면 아이는 "정말 방이 지저분하네요. 빨리 치울게요" 라고 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해요! 내가 그렇게 보기 싫으면 집 나가면 되잖아요!" 하고 맞받아치거나 문을 꽝 닫아버릴 것입니다.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먼저 아이의 내면 세계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이며 가수는 누구인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무엇이며 선생님은 누구인지, 요즘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등 자녀의 내면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서로의 내면세계를 알게 되면 자녀는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누굴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오해와 불신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좀 더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마음을 보이기에 아이는 부모에게 존중받는 기분이 듭니다.
아이의 결정을 존중한다
감정코칭은 컨설턴트로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안은 해줄 수 있지만 결정까지 내려주고 실행할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행동의 한계를 분명히 해준 다음, 그 한계 안에서의 선택과 결정은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아이가 내린 결정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까지 아이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이혼하면서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엄마나 아빠 둘 중에 누구와 살래?" 하고 물으면서 너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합니다. 아이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죄책감과 상실의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합니다. 부부싸움이나 경제적 문제와 같은 어른들의 문제는 어른들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되, 아이의 권한 안에 있는 일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 생일잔치에 갈 것인지, 아니면 이모와 수영장에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 등입니다. 또한 옷 사러 가서 치마를 고를지 바지를 고를지, 학용품을 정할 때 자신의 선호도에 맞는 것을 고르는 등 아이가 감당할 수 있으며 인지 발달 정도에 맞는 상황에서 아이 스스로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이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아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거나 실패를 해도 그것 또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훌륭한 자양분 역할을 합니다. 친구의 생일 선물로 고른 헤어밴드를 친구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경우를 경험다거나, 친구 따라 선택했던 축구부가 힘에 부쳐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반에 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일 정도는 약이 되는 경험입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공격적이고 충동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역시 뇌와 호르몬과 관련이 있습니다. 감정의 뇌인 변연계에는 '편도체' 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감정을 조절하고 공포를 기억하는 역할을 합니다. 남학생이 더 공격적인 것은 바로 이 편도체가 여학생보다 발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격한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을 편도체는 생명이 왔다갔다 할 정도의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뇌 속의 피가 파충류의 뇌로 쏠리면서 본능적으로 전투태세에 들어갑니다. 호르몬도 남학생의 공격성을 부채질합니다. 청소년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세로토닌이 적게 나오는데, 남학생은 여학생보다 세로토닌 분비량이 더 적습니다. 그런데다 공격성 및 충동성과 연결되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여학생보다 10배는 많이 나오니, 남학생이 더 공격적이고 충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춘기 여학생도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것은 남학생과 비슷하지만 표현하는 양식이 조금 다릅니다. 뒷이야기나 수다로 공격성을 표출하거나 화가나 울어버리는 형태로 표현합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면 청소년들이 감정을 표출할 때 좀 더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의 상태를 잘 이해하고 도와주자. 누구나 사춘기 시절을 격기 때문에 아이의 뇌 상태를 알고 행동하면 아이들을 충분히 도와 줄수 있다.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믿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성인이 되었을때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갈 수 있다. 사춘기는 부모와 아이에게 힘든시간이지만 이 또한 성인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시간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을 제대로 보내지 않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미숙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어하는 아이를 천천히 그리고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참고 서적>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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