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운동, 혹은 놀이에 미술까지 거의 모든 부모는 자녀가 내놓는 결과물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은 하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해냈는가?"에만 더 집중하는 것이죠. 공을 던져 통 안에 넣는 행위는 결과물에 해당하며 아이들은 어른의 요구대로 그 일을 잘 해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스스로 놀이를 고안해서 무료한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능력을 쉽게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유치원 시기부터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며 친구를 사귀고 이후 사회에 진출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로서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리더십의 대표를 떠올릴 때 기업의 CEO나 조직의 대표를 떠올립니다. 대부분 CEO 또는 대표의 자질은 목표를 위해 여러 부수 기관과 스태프들을 이끌어가는 능력, 그리고 상황에 따라 정확한 판단과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이끌어갈 때 지도력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성공적인 기업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CEO를 관찰하면 부하직원들보다 꼭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각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을 잘 이끌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곤 하죠. 그런 능력은 점수로만 나타낼 수 없는 '또 다른 능력'이며,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자질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질은 언제 어떻게 키워줄까요?
어린 시절 아이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계획한 것을 스스로 해나가면서 '주도성'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것이 잘 형성될수록 이후 사회적 관계 속에서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가 바라는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자기주도 학습이 되는 아이로 성장시키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걱정과 조바심이 앞서는 바람에 자녀를 과소평가하여 부모가 먼저 챙겨주고 이끌어 주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인지 학습이란 아이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학원, 훌륭한 교사를 만나더라도 아이가 그것에 관심이 없거나 하고 싶다는 동기가 없다면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결국 주도성이란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속해서 일을 진행해 가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7세 이전에 형성되는 '주도성'은 이후 발달 과정에서 리더십과 자신의 계획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능력의 기초가 됩니다.
주도성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는 7세 이전의 유아기입니다. 아동 발달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아이의 능력은 어떤 계획과 순서에 의해 지속해서 변화해 가는데, 그 가운데 어떤 특성이 차별화되어 매우 급속하게 발달하는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발달에서는 '결정적 시기'라 말합니다. 아이들은 신체 발달 과정의 경우, 신장이 160센티인 20세 성인 여자가 있다면 태어나서 2년 동안 이미 80센터가 자라고, 이후 18년 동안 나 뭐지 80센티가 자란다고 볼 수 있죠. 18년 동안에도 정비례 적으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중학생이 되면 1년에 10~20센티씩 불쑥불쑥 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몸무게의 경우, 약 3킬로로 태어난 아기가 100일 정도 되면 약 2배로 늘어나 약 6킬로가 되고 1년이 되면 약 9킬로가 됩니다. 1년 만에 3배까지 증가하는 셈입니다.
신체의 경우처럼 두뇌에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 진행됩니다. 미국 소아 정신분석가 에릭슨에 따르면 7세 이전에 아이들이 부모와의 경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성취하는 능력들이 이후 사회성 발달과 성공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1년이 지나면서부터 아이는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하여 세상을 향해 능동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눕거나 엎드려서 자신의 요구를 누군가가 들어주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존재였지만,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원하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서 하고 싶은 것도 점점 많아집니다. 3세 유아들이 자율적으로 무엇인가를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기서 '자율'이란 말 그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구속당하지 않고 해보는 것'입니다.
발달 과정은 서로 상호적이어서 이러한 사회성 발달이 언어적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때 아이들이 잘 쓰는 단어가 앞서 이야기한 '내가' 그리고 '싫어' 하지만 이런 의지의 표현과는 달리 아이들은 아직 운동능력이나 근육 움직임이 미성숙한 탓에 실수가 많습 니다. 컵에 우유를 따르다가도 왈칵 쏟거나 숟가락질이 서툴러 밥을 흘리기 일쑤입니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이럴 때 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거봐, 넌 못하잖아. 엄마가 해줄게, 응?" 엄마가 아이의 손발 역할을 해주면 식탁이며 마루는 지저분해질 수 있겠지만 바로 이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기회가 사라집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유의지를 시험할 기회 말입니다. 이전까지 아이는 누워만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여 눈앞에 있는 장난감도 자기 마음대로 잡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기를 1년 가까이 보냈습니다. 그러다 이제 서툴게나마 이동 능력이 생겼고, 비로소 자기 의지대로 해보려고 마음이 바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다리 근육이나 손가락 움직임이 완전한 수준이 아니죠. 여기서 '완전'이란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돌 즈음의 아이에게는 뭐든지 흘리고 놓치는 것이 지극히 잘 발달해 가고 있으며 그 자체로도 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최상의 100퍼센트를 기준으로 정해놓고 1세 아이의 행동을 50퍼센트 또는 30퍼센트 발달 정도의 미완성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애 최초로 자기 의지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일련의 시도가 부모에 의해서 번번이 차단당할 때 아이는 점점 자기를 내면의 세계로 밀어 넣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학교에 들어가서는 엄마로부터 '왜 너는 다른 아이처럼 손들고 발표를 못 하니?', '왜 남들 앞에서 네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니?'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과연 아이의 잘못일까요? 아이가 자신감이나 표현 의지는 이미 오래전에 엄마의 친절한(?) 강탈에 의해 사라져 버렸는데 말입니다.
아동의 인지 학습은 주로 본인이 능동적으로 학습을 하느냐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좀 더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부모가 자녀에게 학습을 위한 높은 수준의 논리, 분류, 기억, 이해, 문제해결 능력을 직접 가르치며 주입한다고 해서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와 전문가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죠. 어른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도록 지름길을 알려주고 도움을 주면 아이가 쉽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꼭 심어주고 싶어 하는 이 '기술'들은 유감스럽지만 주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근거해서 스스로 이해한 뒤 이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실행해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현재 생각과 논리를 현실에 적용하고 때로는 한계를 느껴가며 스스로 지식의 영역을 확장해 갈 때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도적인 아이'란 이러한 과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아이를 말합니다. 능동적 학습은 아이가 스스로 원하여 활동에 참여할 때, 그리고 직접 경험한 것들에 대해 논리나 법칙을 자발적으로 이해하고 자 노력할 때 가능해집니다. 이때 아이가 주도하는 어떤 활동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고, 지지자의 역할을 꾸준히 해주면 아이의 능동적인 학습은 단계적으로 결실을 보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주도성이 중요한 걸까요?
아이가 어떤 활동을 주도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활동에 기꺼이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원해서 스스로 참여하는 것은 곧 아이의 내면에 숨어 있던 흥미와 관심, 의도와 능력에 적합한 것임을 반영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는 자신이 주도하는 활동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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