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학부모님이 너무 걱정스럽게 오셔서 "제 딸은 자꾸 파란색만 좋아해요" 옷도 파란색으로 입고 싶어 한다고 아이의 취향이 또래 친구들처럼 핑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들이 여자 색 남자색이 정해진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여자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왜 이렇게 색으로 남녀를 구분 지었을까? 궁금해 졌다. 산부인과에서도 출산 준비하는 예비 부모에게는 성별을 묻고 그에 맞는 컬러를 정해 아이의 용품을 추천해 준다. 세상의 빛을 보기 전부터 이미 색으로 남녀가 구분되는 아이들, 과연 태어나지 않은 모든 남자아이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핑크를 여자아이들만 선호할까?
페기 오렌스타인의 책 (Cinderella Ate My Daughter)에 따르면,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아 이 성별에 따른 색깔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세제 품질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라 위생상 아이 옷은 주로 삶았는데, 난관이 있었다. 바로 염색 기술도 요즘만큼 발달하지 않아 색깔 있는 옷을 삶으면 모두 물이 빠졌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실용적으로 모두 흰옷을 입었다고 한다. 의외의 사실은 또 있다.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권력 욕망•공격성•피를 상징한 빨간색은 남성의 색깔이었고 작은 빨강'인 분홍도 역시 남성을 상징했다. 반대로 파랑은 여성적인 색깔이었다. 옛 애니메이션을 봐도 그렇다. 디즈니 프린세스계 의 조상 격인 신데렐라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채 무도회에 출석하고, 앨리스 역시 파란색 옷을 입은 채 이상한 나라를 휘젓고 다녔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남자와 여자를 색으로 구분을 짓는 것은 한국에서 뿐만아니라 문화적 배경이 다른 미국 아이들에게서도 보인다. 사회적으로 관습화된 주된'의 결정권을 누가 만들어 놓은 걸까? 정말 태어날 때부터 직관적으로 파랑과 핑크는 끌리는 사랑이 따로 있는 것일까?
위 그림에서도 이 공식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의 화가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 (Franz Xaver winterthalter, 1805~1873)이 1846년에 그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가족 초상화를 보자. 27세의 여왕은 이때 이미 남편 앨버트 공과의 사이에서 5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였다. 그림은 여왕의 가정적이고 인간 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가정을 평화롭게 일구었듯이 대영제국 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이 있다. 여왕 왼쪽에 있는 두 아이가 '왕자'라 는 사실이다. 맨 왼쪽에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이는 나중에 작 센코부르크고 공작이 되는 둘째 아들 앨프리드인데, 지금의 눈으로 보면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이다. 도대체 왜 왕자에게 마치 여성용 드레스를 축소한 듯한 옷을 입혔던 것일까? 이유는 단순했다. 이때만 해도 서구인들은 기본적으로 어린 아이들을 중성적인 작은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년과 소녀 모두 같은 옷을 입히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또 당시 여성적인 요소로 간주했던 '약함’ ‘순수함’ ‘의존성' 등은 유아의 특징이기도 했기에, 자연스레 어린 아들에게도 여성적인 드레스를 입하게 된 것이리라.
아이들은 이렇게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 자신의 의지로서의 선택 보다는 어른들의 의지에 따라 그림 속 인물들처럼 치마와 바지를 입게 되었다. 이것은 옷의 색깔에 있어서도 보인다. 여왕 바로 옆에 서 있는 아이는 나중에 에드워드 7세가 되는 큰아들이다. 에드워드 왕자도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런 데 위 피스의 색깔이 요즘 우리가 여성적인 색깔로 간주하는 붉은빛이다. 반대로 그림 오른쪽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는 파란색 리본으로 장식한 보닛을 쓰고 파란색 띠를 두른 드레스를 입었다. 이 아기는 왕자가 아니라 갓 태어난 셋째 딸 헬레나 공주이다. 이처럼 지금과는 정반대인 색깔 규칙은 20세기 초까지도 이어져, 1918년 6월 미국의 한 무역 전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리기도 했다. "소년은 핑크, 소녀는 파랑이 일반적으로 통하는 규칙이다. 핑크는 더 단호하고 강인한 색이고, 파랑은 더 섬세하고 앙증맞아 예쁘기 때문이다“. ‘빨강(분홍)은 여성의 색, 파랑은 남성의 색'이라는 지금의 통념은 사실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렇게 아이가 여자아이가 파랑을 좋아하면 또는 남자아이가 핑크를 좋아하면 불안하고 '성 의심해 하며 불안하게 보고 있게 된 것일까?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정해놓은 '색'이 아닌 필요에 의해 선택하던 색의 고정성을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이는 '색'을 구분해 놓음으로써 더 많은 이득을 가져갈 수 있는 자본주의 기업의 상술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성별에 따른 색깔 이미지를 고안한 뒤 마케팅을 하고, 이를 동해 성별이 다 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장난감을 이중으로 구매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딸이 쓰던 분홍색 장난감을 남동생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추가로 파란색 장난감을 구매하게 만드는 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 역시 이러한 자본주의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얀색 내복을 입은 채 세상살이를 시작한 아이들은 유치원을 가면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가 핑크에 열광하게 된다. 색을 칠할 때 너도나도 핑크를 선호하게 되는 상황은 아이가 사회성을 배우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색을 권유받고 있는 것은 아닐지 선택이 아닌 유도로 만들어진 '취향'이 아닐지 이제는 고민해야 한다. 여자아이도 파랑을 좋아할 수 있으며 남자아이도 핑크를 선호 할 수 있고 이것이 각자의 취향임을 인정해 줘야 아이만의 감성과 느낌을 죽이지 않고 성장시키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느낌과 감성을 믿고 성장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 어른의 고정된 시선으로 아이를 억압하지 말자. 이것은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고 걱정하며 내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 괜찮은 것이라고 사람은 각자 좋아하는 색을 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당연하다고 말이다.
참고 문헌
<여자아이는 정말 핑크를 좋아할까> -호리코시 히데미-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이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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