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의 얼굴 위에서 모빌을 흔들어줘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아기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어떤 아기는 흔들리는 모빌에 '호기심'을 보이며 잡으려고 까지 한다. 또 다른 아기는 움직이는 낮선 물체에 두려움을 느끼고 얼굴을 찡그리거나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온몸으로 거부한다. 같은 월령의 아기들에게 같은 자극을 주었는데 왜 이처럼 각각다른 반응 을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아이마다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전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형성된 기질은 아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발달심리학자 제롬 케이건 (Jerome Kagan) 기질 연구로 평생을 보냈으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박사는 어린 시절의 기질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어렸을 때 유난히 수줍음을 탄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는데, 실험자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MRI로 촬영해보니 수줍음을 많이 탄 성인의 편도체가 다른 성인에 비해 더욱 활성화되었다고 밝혔다. 실험자에게 낯선 얼굴의 사진을 보여주자 두려움이나 경계심 등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 있는 편도체가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어릴적 수줍음의 유발이 뇌의 차이에 기인했으며 2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제롬 케이건 교수는 500명의 아이가 영아에서 청년이 될 때까지 무려 20여 년 동안 그 기질이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 관찰했다.
세 살 미만일 때 전체 아이들의 약 20%는 낯선 사람이 오자 뚜렷한 반응을 보였다. 팔다리를 마구 흔들어대고, 만나는 시간의 3분의 1 동안 울어댔다. 또한 몸을 일으켜 등을 뒤로 젖히며 온몸으로 지금의 상황이 싫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아이 중 40%는 대개 가만히 앉아 있었고, 별로 울지 않았으며, 자주 옹알거리며 웃기도 했다. 제롬 케이건 박사는 이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었을 때 다시 만나보았다. 이전에 수줍음을 많이 타던 아이들은 더욱 말이 없어졌었다. 교사가 질문해도 손을 들거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떠들지 말라는 교사의 규제를 잘 따랐으며, 아이들을 관찰하기 위해 교실 뒤에서 있는 연구원을 매우 경계했다.
이에 반해 이전에 수줍음을 타지 않던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발표 에 참여했고, 교사의 규제와는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 렀으며,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연구원 곁으로 한 번 이상 다가오는 행동을 보였다. 제롬 케이건 박사는 저서에서 어린 시절 수줍음을 타던 아이를 내성적인 기질, 수줍음을 타지 않던 아이를 외향적인 기질로 나눴다.
그리고 내성적인 아이는 활성도가 높은 편도체를 가지고 있어서 공포심이 강하지만 외향적인 아이들은 편도체가 예민하지 않아 호기심과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위험을 무릅쓴다고 밝혔다. 20여 년 에 걸친 제롬 케이건 박사의 '종단적인 기질 연구(같은 연구 대상을 오래도록 추적하며 관찰하는 연구)' 결과는 태어날 때 한번 결정된 기질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 행동은 성격에서 나오고 성격은 기질에서 나온다는 것 을 알수 있다.
타고난 기질은 평생 변하지 않을까?
기질은 아이의 감정이나 사회성을 지배하며, 자라면서 그 영향력이 줄어들기도 하지만 일생을 두고 일정하게 유지된다. 물론 유전적인 기질이 환경과 어우러져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성격을 형성하지만, 그것만이 성격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기질은 전적으로 유전에 의하지만, 성격은 주변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전은 감성, 사회성, 공격성, 성실성 등과 같은 성격 특징의 50% 정도를 결정하며, 나머지 성격은 삶의 경험, 즉 아이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기질은 주로 하부 변연계, 특히 편도체에 의해 정해지고, 성격은 뇌의 전체 영역, 특히 앞쪽의 전두엽이 관여한다. 전두엽이 발달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므로 성격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데, 환경의 영향이 너무 강하면 변연계의 구조를 변화시켜 기질이 바뀌기도 하고, 같은 기질이라도 환경에 적응하 면서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기질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적어도 40%의 아이가 기질의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면을 활용한다고 되어 있다. 결국 기질은 그 자체로 드러나기보다는 특정한 성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제롬 케이건 박사도 두 살 때 내성적이라고 판정받은 13명의 아이 중, 단 2명을 제외하고는 사춘기가 되었을 때 자신의 내성적인 행동을 극복했다고 밝혔다.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아도 기질이 만드는 성격은 '환경'에 따라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질의 장점과 개성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질만 두고 좋은 기질이냐 나쁜 기질이냐를 구별할 수는 없다. 부모 또한 내 아이의 기질이 좋거나 나쁘다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아이와 부모사이에 기질이 충돌하면 아이는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다.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선 놀라서 교감신경계가 흥분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의 현상을 겪는다. 또한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지속되면 아이의 뇌는 전두엽의 이성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변연계의 감정 조절 기능조차 약화해 오직 생존을 위한 처리에만 급급하게 된다. 자연히 아이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과잉 행동을 보이며, 자신을 학대하기도 하는 등 행동장애와 학습장애가 생기기 쉽다. 부모와 아이의 기질이 갈등을 겪으면, 부모와의 관계가 아이에게는 뇌 발달을 저해하는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기질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의 기질을 존중하거나 수용하지 않고 부모가 마음대로 기준을 정해 아이를 밀어붙이면 문제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아이의 기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때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첫째를 키웠던 것처럼 둘찌를 키우려고 할 때, 뭔가 어긋나는 징험을 하면서 '큰애랑 작은해는 기질이 다른 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질이나 성격은 형제끼리도 달라서 몰아붙인다고 단번에 다른 기질이나 성격이 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부모의 강압적인 행동은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참고서적>
두뇌성격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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